우리는 보통 개인적인 신념이나 종교적 의미로, 혹은 건강의 목적 등으로 육식을 하지 않는 분들일 채식주의자라고 합니다. 풍족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철없이 본인 신념만을 고집하는 것 마냥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대의 신념을 존중하는 등 단어의 의미가 살아있는 듯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채식주의자라 불리는 분들은 과연 그러한 정당성이 있어야만 육식을 거르고 채식을 추구하게 되는 것일까? 혹은 건강에 이상이 있거나 본인의 신념이 식욕을 지배하는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 분들은 채식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을까? 과연 본인들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혹은,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어 괴로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다양한 관념이 발생하는 시점, 그 관념이 발현하는 것을 목격하는 입장, 그 모호한 관념의 경계를 넘는 교감, 그 모든 것을 주변에서 간접 경험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스포일러 주의>
1인칭 관점으로 시작한 첫 이야기 '채식주의자'는 아내 영혜가 어느날 채식주의자로 변화하며 느끼게된 남편의 입장을 보여 줍니다. 지극히 평범함만을 추구하던 남편이 이상한 기운을 느끼며 관찰한 아내의 모습은, 평범하다 생각했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고, 그 이상을 알아보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정당하다는 어투로 이어 갑니다. 격정적이고 실리적인 남편의 논리는 명확한 근거 없이 갑자기 변화한 아내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미친 것과 같은 타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칩니다.
이제 관점은 3인칭으로 벗어나, 동일한 사건을 목격한 형부의 모습을 관찰합니다. 무언가 수동적인 입장에서 관망만 하는 듯한 그가, 어느 순간 어떤 이미지에 사로잡혀 강한 욕구를 드러내는 과정을 그립니다. 처제의 갑작스러운 변화 보다는 어릴 적부터 있었고 성인이 된 후에 남아 있는 몽고반점에 강렬한 끌림을 느끼며, 그것을 자신의 한 예술작품으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형부 자체도 이유를 모르는 강렬한 욕구, 성적 욕구라기 보다는 본인의 예술적 갈망과 같이 묘사된 욕구에 끌려가는데, 처제인 영혜는 그 욕구에 오히려 위안을 얻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혜 본인을 괴롭히던 꿈의 정체나 이유가 다른 것이었다는 일종의 깨달음까지도 얻는듯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술적인 표현이라는 모습으로, 영혜의 몸과 형부의 몸에 그려진 것은 식물이었고, 그 둘의 성행위는 식물의 교합을 나타내듯 묘사되고 있습니다. 둘 다 이유는 모르지만 신기하게 유일하게 둘만 교감하는 듯 합니다. 형부는 처제가 갑자기 변화된 것이라 생각하는 것조차 없으며, 오직 태생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 본성같은 몽고반점에만 집착 합니다. 둘만이 현실과 다른 차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합니다. 불륜이란 형태로, 거북하게 묘사되는 듯 하지만 그래도 영혜가 유일하게 말을 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으로 미루어, 이 둘은 소설 내 인물 중 유일하게 서로를 이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련의 사건들은 이제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관점으로 다시 반복 됩니다. 이 모든 사건을 옆에서 다 목격하고, 영혜와 제일 가까운 혈족으로서 모든 사건의 근원에 대해 과거의 경험이나 대화 등을 복기 합니다. 현실을 붙잡고,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삶을 살아온 언니의 삶은, 일상의 대화조차 따옴표로 인용되지 않을 정도로 무미건조 합니다. 인용되는 말 조차 산문으로 쭉 언급되며, 억눌려있는 듯한 답답함이 이야기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 감정조차 크게 표현하지 못하고 언니, 엄마, 맏딸, 아내로서의 삶을 살면서 가정의 경제까지 책임지고 끝까지 동생을 돌보는 것을 보면, 어쩌면 잠깐의 감정의 격동으로, 본인이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담담하게 자살을 직전까지 실행하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 같아 소름이 끼칩니다. 동생은 음식을 거부하고, 물구나무를 서가면서 나무와 같이 위로만 자라려 하는데, 언니는 피눈물을 흘리고, 하혈을 하며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아래로 가라앉기만 합니다. 단지라고 언급하기엔 어렵겠지만, 동생이 고기를 먹지 않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 치고는 엄청난 파장입니다.
활자의 힘은 대단합니다.
전 글을 쓰는 것이 더욱 기억을 잘 하게 되고, 어느샌가 글을 쓴 것은 세월이 갈 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반면 그렇지 않는 것은 잊어버리기가 일쑤이기에,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라는 말로 그 느낌을 묘사하려 했고, 블로그 타이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 그 이상의 교감을 전달합니다. 활자의 저 너머로 작가와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 활자 뒤 혹은 그 여백 사이로 무수한 화면과 배경들이 펼쳐지는 착각, 눈으로 활자를 읽으면서 머리 속이 자연스럽게 화면을 그려내는 경험은 정말 독서란 행위의 즐거움 그 자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몰고 온듯한 느낌을 안겨 주었습니다. 모든 활자가 마치 역동적으로 그 감정을 전달하는 듯 합니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상당히 무겁고 강렬한 울림을 주는 것은 두말 할 나위 없습니다. 많지도 않은 등장인물로 어찌도 이렇게 격정적인 감정의 굴레를 묘사했는지 정말 놀랍기만 합니다.
물론, 더러운 불륜 이야기랄지, 읽기 힘든 역거운 이야기라는 것에 대해서도 공감 합니다. 저 역시 읽는데 편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거북한 느낌을 대다수의 독자에게 전달 했다면, 작가의 역량이나 글의 몰입도가 아주 좋았다고 생각되며, 왜 이런 거북한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근원을 계속 고민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채식주의자라는, 어쩌면 사회가 일부의 사람을 그만의 기준으로 구분한 듯한, 무언가 애매모호한 사회적 정의의 단어에서 그 단어의 흉포성, 그로 인해 변화하는 주변인들의 모습, 무관심, 원초적 욕망과 그로 인한 형이상학적인 교감, 사회적/도덕적 관념의 잣대, 결혼이라는 제도의 가벼움, 어릴적의 트라우마로 발생한 강렬한 후유증, 그리고 삶과 죽음,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관념으로 생성되는 파장을 나타낸 것이라 생각 합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과 그 이미지와 함께 각인된 듯 합니다. 어디서 풀려야 할지 모를 꼬여버린 뿌리 처렴 얽히고 섫힌 듯 합니다. 오래도록 이 관념의 실타래를 풀고자 많은 생각에 빠져버릴 것 같습니다.
부가적으로, 아이패드 어플을 이용한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생각보다 종이책이 아쉽다는 느낌은 덜했습니다.
배경색 및 글자 크기 조절도 가능하고, 간단하게 부담없이 메모도 가능하며, 무엇보다 휴대의 편의성 덕분에 앞으로도 자주 전자책을 이용해 독서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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