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태호 작가의 만화는, 펀치드렁커드가 제일 처음 이었습니다. 연재 중일 때 이 만화의 흡인력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완결이 되면 보려고 아껴뒀다가 일부러 과거 만화를 찾아 본 것이 '당신의 과녁'이었습니다. 그리고, '펀치드렁커드'가 완결된 후 한 번에 몰아서 봤을 때는, 고태호 작가의 작화력이 더욱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네이버에서 소개하고 있는 첫 문장부터 심상치가 않습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정신과 의사. 우울증이 증가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다 보니,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너무나 기대가 되었습니다.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807164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작 '당신의 과녁'이 수년간 누명을 쓴 강렬한 감정이 주변에 영향을 어떻게 끼치고 있고, 변화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면, '펀치드렁커드'는 다양한 감정선이 서로 얽혀 발생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인공부터, 우울증을 치료하는 의사가 우울증을 앓고 있고, 주변인들에게 철저하게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하고 있음에도, 유튜브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를 위해 도움을 주고 있는 극단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본인이 환자에게 인간 혐오증이라고 고백하거나, 환자는 그런 의사를 무시하고, 동료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죠.
그런데, 우연히 발생한 날씨로 인해, 전혀 관계가 없는 대상자들이 한 장소에 고립되면서 사회의 환부를 드러내듯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정신병동 사람들과 한 군데 갖혔다고 병동 사람들을 벌레 보듯 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수없이 자해하는 자녀가 있음에도 행복한 가정을 연기하는 가족, 치매를 인정하지 않으며 독설을 내뿜는 노인, 아무런 감정없이 무절제한 성행위를 하는 여성, 대놓고 조폭 모습에 분쟁을 조장하는 폭력배, sns 중독으로 사회를 관망하듯 쳐다보기만 하는 젊은이 등. 각 캐릭터가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디엔가 주변엔 꼭 있을법한 그런 대상자들이 모여 격정적인 감정 변화를 보여 줍니다.
고태호 작가의 대단한 점은, 각 캐릭터들의 감정을 소름끼치도록 잘 묘사한단 것입니다. 한정된 캐릭터에 국한되지 않고 실로 다양한 캐릭터들을 서로 얽혀 큰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고 이것이 웹툰의 엄청난 긴장감을 지속시킵니다. 실종이나 화재, 다툼으로 발생되는 사건들로 중구난방의 감정들이 발현되는 것 같지만, 결국 캐릭터들의 아픔을 다른 인물들이 감싸게 되는 신기한 조화를 이뤄냅니다.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소위 '정상인'들은 하나같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픈 상처를 지닌 대상자 들입니다. 자살 시도랄지, 무분별 성행위 집착, SNS 중독, 자녀들 재산 싸움 등, 평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낯선 사회적 문제이지도 않은, 자주 접하게 되는 사건들 입니다.
병동의 환우들이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어떻게 비춰지는지 냉정하게 보여주지만, 실상은 그 환우를 대하는 사람들이 더욱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아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각 사건을 극복하면서, 오히려 '정상'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상처가 더 많이 드러나고, '비정상'으로 비춰진 사람들은 회복이 되는 상황이 연출 됩니다. 사실은 이미 회복이 되었음에도 외부의 시선으로 인해 회복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의사라는 직업의 대상이 이런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보니, 단어, 대사 하나하나가 촌철살인 입니다. 환자를 도우면서 도덕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만 같은 의료 종사자분들도 '책임 강박증'이란 단어로 그 감정의 무게를 묘사 합니다. 그 외에도,
'나 자신을 위해 남을 돕는다'
'다만 누군가가 불안하다고 해서, 누군가의 권리까지 뺏을 수 있는 겁니까?'
'난 책임감이 아닌, 책임을 져야한다는 강박을 지고 있었을 뿐이라고'
'강하지 않는 나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때론 누군가를 의지하는 것이, 그 사람을 상처입힐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인 즉슨, 정신질환은 사람과의 관계문제라는 거죠'
'인간은 고쳐 쓰는게 아니야' 라는 말과 대비하여 '사람은 바뀝니다. 변할 의지가 있다면'
'감정이 생각을 낳는게 아니라, 생각이 감정을 낳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평가 받는게 무서워서, 직면하는게 무서워서, 미리 스스로에게 벌 준 거잖아요'
'누가 실수하면, 넝마가 될 때까지 물어뜯는 걸 즐기고요, 그래야 내 위치를 사수해 역할을 얻는 거 같으니까. 그래야만 일시적인 우월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배설된 것이 아니라 정제된 것만 받아 들이세요'
'떳떳한 일만 하도록 노력하세요. 양심이 곧 자존감이 되어줄 겁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대사는 아래 내용이었습니다.
'몇번이 되든 기회를 줍시다. 스스로에게. 언젠간 이겨낼 그 단 한번을 위해'
제한된 공간 내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다툼 이얼정 서로 지속적으로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 보니, 결국에는 모두가 치유되는 듯한 조화를 보여 줍니다. 이미 대사 속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병동에 있는 분들과 밖에 있지만 숨기고 있는 질환이 있는 분들이 결국에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배우고 의지하며 정신질환을 이겨내는 모습입니다. 걷혀진 날씨와 함께 모두 협업하며 눈을 치우는 모습이, 스스로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묘사된 듯 합니다.
가벼운 만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글이 많아서, 만화적인 코믹 요소가 적어서 지루하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유있게 읽어 보신다면 분명 어느 한 부분에서는 위안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웹툰이라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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