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하고 싶었지만, 호기심에 다시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멀리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전작들이 너무나 처절한 묘사와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이야기 전개로 인해 완독 후 고통스러운 감상 여운이 남았기 때문 입니다. 이런 여운을 전해주는 작가의 능력은 가히 놀랍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그 강렬한 감각을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글들을 어떻게 쓰는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네요.
하지만, 그만큼 이야기의 내용들이 속속들이 생각나고, 그 아픔이 생생히 전달 되기에, 문자를 통해 전해지는 강렬한 여운을 다시 느끼고 싶어, 다시 한강 작가의 책을 시작 했습니다. 이번에는 제목도 생소한 '히랍어 시간' 입니다.
여전히 묘사가 너무 상세해서 그 무게에 짓눌리는 듯 합니다. 주변 배경이나, 인물을 소개하는 장면 등에서 풍부하고 특이한 단어들로 인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고, 어색한 단어들이 어렵진 않습니다. 마치 뜻을 모르는 단어들이 소리나 생김새로 느낌을 전달해 주는 듯 합니다. 주인공이 "숲"이란 단어를 좋아하듯.
소설 전반적으로 한강 작가 특유의 고독의 분위기가 배어 나옵니다. 대부분 독백과 속깊은 마음의 묘사가 우울한 쪽으로 더 가깝지만, 이 또한 각 인물들의 정황과 생각을 생생히 전달되는 장치인 듯 합니다. 무엇보다 어투를 차별화해서 각 캐릭터를 구분하는 것은 놀랍습니다. 평이한 표현인 것 같지만, 말을 잃어가는 여자의 생각은 더 산문적으로 딱딱하게 감정 또한 잃어가는 듯한 느낌이고, 시야를 잃어가는 남자의 고독은 더 감성적이며 슬픔에 매몰되는 듯 합니다. 여자는 이미 말을 잃어본 경험이 있고 더한 상황에 격한 감정을 넘어선 듯한 반응인 반면, 남자는 처음 겪게되는 절망적인 상실감에 더 큰 두려움으로 외로움이 묘사되는 듯 합니다.
눈물이 흘렀던 길에 지도를 그려뒀다면
너무 가슴이 아리는 문장 이었습니다. 너무 울다 지쳐, 이제 눈물조차 메말라버린, 그 슬픔은 더 깊어지지만 이제 슬퍼하는 것조차 지쳐 버린 느낌이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그녀의 좋았던 기억은 과거의 섬뜩한 경험과 섞여 실제 감정이 파편으로 부서져 사라지는 듯한 메마른 슬픔인듯 합니다. 슬픔과 딸에 대한 그리움이 교차되어 더욱 비장하지만 오히려 담담하게 표현되는 것이 더 아픈 상처로 느껴 집니다. 작가는 어떻게 이리 감정 표현에 탁월한 것일까요? (특히 우울한 쪽으로;;)
상당히 추상적인 표현이 많이 보입니다. 형이상학적인 감정? 시력을 잃거나 말을 잃은 사람의 감정이라 그런건가? 일반인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을 플라톤과 히랍어의 낯설음에 빗대어 표현한 듯 합니다. 그럼에도 응급실 묘사는 흔한듯 한데 그 표현이 날 것 같이 생생합니다. 시력이 없는 사람이 생각한 상황을, 말 할 수 없는 사람이 표현한 것이라 생각되서 그런가. 불가능한 소통이 어떻게든 전달된 듯, 그 현장감이 더 살아나는 듯 하다.
남자의 오랜 기억을 들으며, 공감한다는 감정이 토할것 같다는 감정으로 나타 납니다. 공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듯, 서로 너무 극단적인 상황에 있다보니 느낄 수 있는 감정이 토하는 거여서일까. 아니면, 감정이 너무 희망적이어서 신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그걸 또 서로 공감하는 듯 행동하는 것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일까. 그렇게 서로 비슷한 느낌의 추억이 서로 엉키는 듯 클라이맥스로 치닫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는 듯한 마지막 몇개의 단락은 결국 의식의 단편이 마구 얽혀 뒤섞인듯 합니다. 소제목이 있고 없는 것조차 의도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듯 합니다. 마침내 마지막 챕터는 무한인지, 무(無)인지 모를 0으로 끝납니다.
사랑인가, 연민인가, 그도 저도 아닌 서로의 아픔을 동정하는 것인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둘 사이의 강렬한 교감이 일어났단 건 알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감정을 보였지만, 마치 그 감정이 한 사람의 것인 듯 합니다.
여지껏 읽었던 한강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어려운 듯 했습니다. 작가의 강렬한 문체, 몰입되는 이야기, 다양한 표현 및 약간은 다른 형태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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