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오디오북이 유행할 때, 무료 이벤트로 처음 시도했던 오디오북이 이 소설 이었습니다.
유명 배우가 연기해주는 책을 듣다 보니, 마치 라디오극장 같이 실감나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살인자가 기억이 사라지고, 그로 인한 긴박한 긴장이 고조되며, 반전이 있었다 정도만 기억이 났는데, 그 반전이 뭐였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어느날 전자책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읽기 시작 했습니다.
장편소설이라 하지만, 대화가 많고 다양한 여백이 배치되어 2시간 정도 남짓 집중하여 단숨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책은 활자로 읽어야 그 내용이 잘 기억되고 이해가 잘 되는듯 합니다.
단락 사이, 마침표 하나하나, 그리고 다양한 여백 등, 활자 사이로 들리는 듯한 등장 인물의 숨소리, 생각의 공백, 마치 주인공의 치매 상태를 문자로 표현한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디오북으로는 전달받지 못했던 느낌.
주인공의 생각의 꼬리가 짧은 독백으로 뚝뚝 끊어져 묘사되며, 그 생각의 뭉치가 꼭 치매 증상을 경험하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주인공과 동화되어 감정의 기복과 답답한 심정을 이해하는 듯 하달까요. 기억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잊혀져가는 범위나 내용이 점진적으로 더 넓고 많아지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 증상에 대한 답답함과 괴로움을 이해할 듯한 소름.
단순한 기억을 못하는 것 부터, 자신의 작성한 시를 알아보지 못한다던지 하는 근원적인 망각이, 단지 망각이 아닌 충격으로 다가와 더욱 긴장이 고조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망각의 영역이 넓어지고, 주인공의 의구심이 커지는 공간에서는 주인공의 독백이 기억인지, 기록인지, 혹은 망상인지 구분이 안되는 단계로 전환하게 됩니다. 마치 주인공이 착각하는 다양한 평행우주의 형태, 장자의 나비가 생각나는 현실과 망상의 모호한 경계, 그 사이에서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의 발악.
정작, 살인이라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본인의 과거 까지도, 과연 사실일지 착각일지 독자가 의심하게 만드는, 너무 교묘하고 즐거운 소설입니다. 어려운 문구가 하나 없고, 술술 읽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몰입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보니, 김영하 작가가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각이 맞춰지는 시점으로 다다랐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 모든 짐작이 무너지는 결과는, 어쩌면 예측된 반전이면서도 전혀 생각치 못한 결말이었습니다. 주인공이 혼동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묘하게 놓아진 장치는 독자에게도 똑같이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이 착각을 하고, 어느 순간 까지가 현실이었을지 다시 되묻는 듯 합니다.
섬뜩하다 할까요. 한기가 느껴진달까요.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 입니다.
가볍게,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는 소설을 찾아보시는 분들은, 두세시간 집중하여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 합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Reviews >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 : 오빠가 돌아왔다 (0) | 2022.05.18 |
---|---|
도서 : 소년이 온다 (0) | 2022.05.11 |
도서 : 관계의 본심 (0) | 2022.04.29 |
도서 - 풀 : 김금숙 만화 (0) | 2022.04.08 |
도서 : 우린 너무 몰랐다 (0) | 2022.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