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 때, 일본 만화를 보고 자라났고 여전히 그 영향력 아래 있다 생각 합니다.
드래곤볼, 슬램덩크 처럼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만화 외에도, 일본 만화를 더 많이 읽게 된 이유는, 그 소재의 다양성과 전문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야구, 축구는 만화는 너무 많아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이고, 유도, 검도, 발레, 수영, 스쿠버다이빙, 마라톤, 골프 등 실제 경기를 보면서 즐기기엔 지루한 스포츠를 만화로 배웠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건 나중에 종류별로 아는 만화를 한 번 정리해봐야겠습니다.) 최근에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만화가 많이 있지만, 대부분의 소재가 SF나 연애물(특히나 BL류), 스파이물, 기괴물 등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예전처럼 진지한 스포츠 주제나 신기한 직업을 소개하는 만화는 많이 줄어든듯 합니다. 그 와중에 만나기 어려운 스포츠 분야를 진지하고 놀랍도록 그려낸 만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클라이밍부터 시작하여, 등산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고고한 사람' 입니다.
등산 관련 만화는, 예전 이지스카 신이치의 '산' 이라는 만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읽을 때는 재미 있었고 그렇게 기억에 많이 남지는 않았습니다.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가, 사실적이긴 하지만 너무 빠른 전개로 이뤄졌단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해, 동명소설을 기반으로 그려진 '고고한 사람'은 등산에 매료된 이유와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충격적으로 잘 그려냈습니다. 해뜨는 모양을 오케스트라로 표현을 한다던지, 낙빙을 거대한 화물차가 지나가는 고속도로 한 가운데 서있는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그 외 추상적인 느낌을 최대한 현실감 있게 느껴지도록 표현한 부분들이 놀라운데, 가령 계곡을 매트리스처럼 그리고, 바람소리를 사람의 비명 소리로 보여주고, 텐트에 불어치는 바람을 손바닥으로 마구 때리는 모양으로 의성어 조차 넣지 않고 소리를 표현합니다. 동적인지 정적인지 구분이 안가는 장면을 눈이 내려앉는 장면으로 묘사 합니다. 본인의 다른 평행 세계의 평범한 삶을 상상하며, 그 모습이 눈물 방울이 되어 깨지고, 현재의 모습은 괴물로서 표현되는 장면 또한 생각 납니다.
등반을 하면서 주가가 하락하는 것, 자일을 당기면서 사회 인간관계의 사슬에 묶여있는 듯한 단순한 비유 등의 발견도 재미 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등반가의 머리속을 헤집는듯한 그림 묘사에 감탄하게 됩니다. 죽음에 다가와 주마등을 보면서 마지막 몸부림을 하는 장면은 소름끼칠 정도였습니다. 그 인물의 삶과 산,회한 및 그 의미와 함께 어릴적의 서글픔까지 담은 죽음은 실제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느낌입니다. 섬세한 표현과 추상적인 새를 대입하여 죽음의 마지막 움직임을 표현하고, 어릴적 기억과 함께 현재 얼굴이 교차되어 나오며 삶이 마감되는 모습이 소름끼치게 표현되었습니다. 또한 환상적이고 추상적인 도형의 모습으로 묘사된 성행위 장면은 어느 실제 야한 장면 보다 저극적으로 다가 옵니다.
그 외에도, 세포가 분열하면서 자아가 분열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몸이 분리 되서 서로 고집을 부리는 장면은, 정밀한 그림과 글만 잔뜩 있는데 긴장감이 가득합니다. 고도장해로 고도를 낮추는 것을 심해에서 떠올라 호흡이 돌아오는 것으로 비교한 것도 그 느낌을 너무 소름끼치게 이해할 수 있게 한 듯 합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독백을 글자가 부분적으로 뒤짚히게 표시하는 것 또한 만화로 표현할 수 있는 영리한 표현 입니다.
다양한 묘사와 작화를 이어주는 것은 그 이야기의 힘입니다. 실제 등반가를 모델로 한 유명 소설 기반의 만화이다 보니, 흥미로운 등산 요소가 다양하며, 그 전문적인 지식의 깊이는 알수가 없을 정도 입니다. 고산에서 벌어질 일이랄지, 그 캐릭터들의 고뇌와 망상 등, 감정이입이 너무나 고조되는 소재들이 유기적으로 재미있게 펼쳐 집니다. 무엇보다, 굳이 산을 왜 오르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기 보다는, 그에 매료되는 순간을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며 왠지 모르게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만큼 몰입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겠죠.
너무 예술적인 만화가 되어버리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 즈음, 일본 만화 특유의 앞뒤 안맞는 작가 세계의 전개도 보입니다. 뜬금없는 회사 여직원과의 갈등 또한 연계성이 모호해지고, 이해할 수 없는 억지 설정같은 부자연스러움도 나타 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과거와 현재 시간대를 랜덤하게 섞어 흐름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나름 뜬금 없는 장면과 함께 현재의 착시, 혹은 과거의 부담감 등의 느낌을 현실성 있게 반영하려 한 듯 한데, 너무 많이 섞이니 뜬금없는 전개가 되어 버립니다. 더구나 갑자기 2년, 혹은 몇개월의 화면 전환과 함께, 최소환의 대화 내용과 그림만으로 설명을 이어 나가려 하니 그것 또한 만화를 보는데 많은 집중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리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등산의 매력을 알리는 것을 넘어 등반하는 사람들의 감정까지 이입될 수 있었던 훌륭한 이야기 입니다. 등반에는 천재인듯한 주인공이지만, 현실에서는 서툴다 못해 아예 불가능할 정도의 사회 생활에 대한 한 복기, 착각 또한 다양한 장면에서 교차로 나오고, 산을 오르며 생각이 많아지는 등산가들의 고충을 보여주는 듯 몰입하게 됩니다. 산은 밀실이고 그곳에서 일어난 것은 산밖에 모른다는 심오한 말과 함께 하나씩 밝혀지는 각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 그와 함께 메인 캐릭터의 이야기도 계속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의 짐을 지게 된다는 심오한 말, 진짜 오랜 등산가가 만화를 그린건가 싶을 정도의 묘사와 감정 표현인듯 합니다.
진중한 스포츠, 진지한 이야기, 혹은 등산에 관심이 있거나 그 무게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은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보시길 추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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