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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Jok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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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스파이더맨 등 히어로 영화를 아주 좋아했음에도, 저스티스 리그라던지 근래 쏟아져 나온 DC, Marvel의 영화는 보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든 것인지, 여러 히어로가 나와서 악당을 이긴다는 컨셉 자체가 맘에 안들기도 했고, 그 사이 혹시나 해서 봤던 원더우먼이 너무나 재미 없어서 실망한 것도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이번에 개봉한 조커 (Joker)는 그런 히어로물과는 다른 형태라는 이야기와 함께, 평론가들의 극찬이 있다는 이야기 정도만 듣고 영화를 보게 되었고, 극장에서 빨리 보게 된 것이 너무 다행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화가 Entertainment, 즐길거리로서 잠깐 웃거나 울거나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던지, 혹은 다양한 주제나 시선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가 딱 그런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영화'가 되는 거죠.

그런 점에 있어, Joker는 다양한 결말과 의견을 논하게 되는 훌륭한 영화라 생각 됩니다. 이런 다양한 의견으로 회자되는 것이 감독이 얼마나 연출을 잘하고 좋은 이야기를 풀어 냈는지 알려주는 지표이지 않을까 싶네요.

개인적인 Joker의 한줄평과 평점은,
조커의 살인과 기괴한 웃음을 이해할 것인가 (4.5/5), 입니다.
-0.5점을 마저 채우지 못한 이유는 아래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왜 이 영화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가?
영화 특성 상 차마, 추천은 하지 못하겠네요;;;
(스포일러 주의)




1. 감독은 조커가 왜 악당이 되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악당으로 '보여졌는지'를 이야기 합니다.

- 살인을 했지만, 살인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 전에 너무 불우한 삶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보여주고 있죠.
- 화장 혹은 가면 속에 얼굴을 가린 채 살인을 하는 것이, 꼭 그 누구든지 상황에 처하면 동일하게 행동할 수도 있고, 가면 뒤의 얼굴이 본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서에게 특히나 더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 요인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네요.
- 아서가 의도하지 않는 정황이 계속 확대 증폭 되는 것 또한, 아서가 의도적으로 조커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떠밀려 된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 나간 것 같습니다. 모든 살인에 이유를 가지고 살인을 한 것을 변호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보여주기'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 결국, '조커는 살인을 했으니 악당이야'가 아니라, 부유한 권력자를 살인한 저항의 아이콘 처럼 변모되고, 그 프레임에 설득된 듯한 모습의 아서를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실제, 고담시는 엉망이 되어가는데 아서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는 악당으로 비춰지게 되는 것이죠.
- 아서가 첫 살인의 이유는 '부당한 대우 및 폭력'이었지, 정신병이 문제였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아서 이전에 이미 여성에게 음식을 던지는 등, 3명의 금융인이 범죄를 저지를 듯한 정황을 그려냅니다. 아서가 아니었어도, 아서의 정신병 때문이 아니라 분명 다른 사람의 분노를 자극하는 상황이었다고 생각 됩니다.


2. 아서는 대중에게 분노의 배출구로서 이용되고, 아서 또한 그 정황을 이용합니다.
- 위에서 언급한 금융인들 (부유층으로 대비되는)의 행위나, 도시 자체가 유지되지 않고, 최소한의 복지가 제공되지 않는 정황은, 아서의 살인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배경이 됩니다.
- 아서의 첫 살인 이후, 태연히 세 번째 금융인을 쫓아가 살해하고, 살인에 대한 자각으로 허겁지겁 현장을 벗어나지만, 곧 화장실에서 본인의 쾌감을 보여주듯 춤을 춥니다. 의도치 않은, 모든 정황이 다 들어맞은 (우연히 동료가 총을 주고, 거리에서 폭행을 당하고...하는 듯한 정황) 불운의 연속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 춤추는 순간이 아서가 그간의 억압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대중의 분노는, 살인이 아니라 살인 자체를 극빈층의 분노로 단정지은 토마스 웨인의 언급을 향합니다. 언제든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토마스 웨인의 방송은 너무 쉽게 이유를 던져준 것 입니다. 이미 누가 살인을 했고, 누가 살해를 당했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분노의 방향이 한 곳을 향하고 도시가 몰락하는 형태의 수순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 되네요.
- 아서는 이런 대중의 의도가 본인에 대한 관심이라고 착각하고 받아 들이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망상에 빠져 있는 순간을 깨닫고, 현실에 대한 자각과 함께 자신감이 급 상승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죠. 이전 동료들이 방문 했을 때에는 한 명을 살해하고서는 다른 한 명에게는 놀리듯 장난을 치기까지 합니다.
- 이후의 장면이, 계단을 내려가며 춤을 추는 모습입니다. 본인의 현 상태를 받아 들이고, 즐기는 듯한, 기괴한 조커가 완성된 것 같았습니다.
- 인터뷰 중, 원래 연습은 자살을 하는 것이었습니다만, 결국 MC를 살해 합니다. 이성적으로 미리 준비한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아닌, 본인의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출한 거죠. 방송이라는 배경이랄지, 본인이 살인을 한 후에 대해서랄지에 대해서는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이미 TV 속에서 자살을 계획한 순간 아서는 노트에 작성한 것처럼 본인의 죽음이 삶보다 더 의미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정황을 이용하려 한 것이죠.
- 그렇게 대중의 기대를 충족하고, 결국 폭동이 일어난 도심에서 대중의 환호와 함께 아서는 또 춤을 춥니다. 의도대로 되었다는 기쁨을 춤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건 관객에게 조커가 광기를 보이는 모습을 잘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3. 아서는 오히려 점차 정신병을 극복하는 듯 합니다.
- 아서의 정신병이 영화의 서사를 해칠 수도 있다고도 생각 합니다. 하지만, 조커의 '광기'라는 묘사하기에는 정신병이 아니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기괴하면서도 희대의 악당으로 묘사되는 조커가, 과연 정말 영리하고 계획적이기만 할까. 오히려 극단의 감정을 표출하며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모습이 더 조커의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그런 면에서 아서는 정신병으로 무기력한 초반과는 달리, 더 활동적이고, 감정적이고, 단호한 모습으로 변화 합니다. 정신병을 극복한다는 생각은, 병이 나아 괜찮아졌다는 의미 보다는, 병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 부분이 사회적으로 정신병을 미화한다던지, 살인을 정당화 한다는 등의 우려를 주면서 불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아서의 불우한 환경과 우연이 만들어난 연속적인 폭력과 차별은, 왠지 정상인도 그렇게 분노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이 또한, 미국 극장에서는 총기를 금지하고 있는 요인이 되겠죠.
- 또한 이 정신병이라는 소재가, 영화의 말미에 모든 이를 혼동시키는 장치가 됩니다. 전체 이야기가 망상인건가, 실제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정신 병동인건가 하는 혼동이죠. 영화에서 끝맺음을 원하는 상황에서는 답답한 순간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 오히려 인셉션과 같이 다양한 결말은 이끄는 영리한 장치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실제 상황이고, 마지막 상담원도 살해했다고 생각 합니다.)


4. 아서가 'THE' Joker가 아닐 거라 생각 합니다.
- 영화의 관점이나 아서의 살인을 보면, 아서가 대부분이 생각하는 그 한 명의 조커(THE Joker)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 됩니다. 배트맨 시리즈에서도 뚱뚱하거나 빼빼 마르거나 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연출 되었듯, 이 영화는 '조커'라는 아이콘이 발생한 것을 보여준 것이고, 아서는 그 조커 중 한 명이라는 것이 더 맞지 않나. 브루스 웨인의 부모를 살해한 조커는 아서가 아니라 대중의 한 명인 조커이란 것이 그 생각을 뒷받침 하는 듯 합니다.
- 아서의 뒤를 쫓는 경찰을 상해한 것도, 대중들이 조커의 가면 뒤에 숨어서 폭행을 하게 되죠. 물론 아서가 대중의 가면을 뺏어 싸움을 유발하고, 경찰이 정황 상 총을 오인발사한 것이 요인이지만, 아서는 그 현장을 이용하고 도망칠 뿐, 현장에서는 다른 조커들이 싸우게 됩니다.
- 아서의 이야기만 다뤄지기에, 다른 조커에 의한 범죄를 상세히 보여지지 않았지만, 이미 '금융인을 살해한 조커', '경찰을 상해(죽였는지 잘 기억이 안나네요)한 조커(들)', '브루스 웨인의 부모를 살해한 조커'가 모두 다른 인물로 나옵니다. 모든 살인이 영화 내내 살인 광대(Clown)으로 나오지만, 아서가 방송에서 소개된 명칭인 조커로서 모든 인물이 동일 시 된 것으로 이해 되었습니다.
- 후속작이 나온다면, 거기에서 또한 아서를 연기한 피닉스 호아킨이 조커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더 설득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5. 정당한 살인이 있는 것인가에 대한 혼동과 감정 변화
- 아서는 금융인 3인, 엄마(혹은 양엄마), 이전 직장 동료, TV쇼 MC, 총 6명을 살해 합니다. 첫 살인은 당혹감에 정당방위로 살해 했다 할 수 있지만, 그나마 3명 중 마지막 금융인은 쫒아가서 살해 후 확인 사살까지 하죠. 그 짧은 순간의 살인에서도 이미 감정이 변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 듯 했습니다.
- 여기서 좀 아쉬운 부분이 엄마를 살인하는 장면 입니다. 엄마의 정신병, 토마스 웨인에 의한 충격, 엄마의 항변 등 극단적인 혼란이 올 법한 정황에서도 너무나 침착하게 엄마를, Mom이 아닌 Penny로 부르면서 살인하는 장면이 오히려 직장 동료를 죽였을 때 감정보다 너무 차분한 게 아니었나 아쉬웠습니다. 여기서 제 평점의 0.5점을 빼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직장 동료를 죽인 장면 뒤에 엄마를 죽인다던지, 혹은 엄마가 병사, 혹은 자살을 하게 된다면 오히려 더 감정의 폭발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됩니다.
- 결국 4건의 살인을 당혹스럽지만 정당화한 첫 살인 - 불우한 학대와 거짓에 대한 실망으로(분노이겠지만 너무 침착해서) 인한 살인 - 차별적인 대우에 대한 분노(이건 명백한 분노)로 인한 살인 - 차별적인 언급에 대한 분노로 인한 즉흥적인 살인으로 이해했고,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첫 번째, 세 번째 살인의 이해 되면서도, 오랫동안 같이 살았던 엄마와, 차별적이고 기분 나쁜 언급을 했지만 처음 본 오랫동안 동경하던 MC를 살해한 것은 단지 조커의 광기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인건가, 그렇다면 오히려 피닉스가 더 감정적인 모습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요...
- 이런 생각이 드는 것 조차 감독이 연출했을까 싶긴 하지만, 조커의 이유없는 살인? 혹은 광기는 충분히 연출한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여러 장면 중, 나중에 계속 생각난 장면 이었습니다. 

눈물이 찔끔 나오도록 입을 찢고 있는 것인지, 눈물을 감추기 위한 장면인 것인지. 물론 후자라고 대부분 생각하겠지만, 영화 초반에 나오는 장면이다 보니, 상황은 웃을 수 없는데 억지로 웃어야 하는 광대의 슬픔을 아서, 혹은 조커라는 캐릭터에 이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게 조커의 행위를 정당화 하듯 감정을 유발하는 장치가 아닌가 하고요. 


얼마 전의 기생충 처럼 상당히 불편하고, 연인이나 가족과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여운이 이렇게 길게 남아 장문의 글을 쓰게 만들고, 또 다양한 의견을 듣고 나누게 하기 때문에, 이 영화가 대단한 게 아닐까요?

아름다운 미장센, 음악 그리고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7~80년대 뉴욕을 보여주는 듯한 거리 모습, 소품, 조커를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준 감독의 연출 등 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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